김씨 아저씨는 걸쭉한 막걸리를 한잔 들이키더니 입을 열었다.
"무서운 얘기는 저기 마을 입구에 있는 현자교에 관한 얘기가 겁나게 무섭지"
무더운 여름날 민박집 주인에게서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나름 새롭고 독특한 경험이었다.
미연과 지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언제서부터인가 저기 보이는 현자교라는 저 다리에서 밤이고 낮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내 친구 중에 중필이란 녀석이 있었는데, 육십줄을 바라보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만화를 엄청 좋아했지.
그래서 그 친구는 매일 읍내에 일을 나가면 만화방에 들러서 책을 빌려오는게 일이었어.
알다시피 여기에 버스가 거의 두 시간 간격으로 다니잖아. 그렇게 해가지고 어느 세월에 출퇴근을 하겠는가.
그래서 중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지. 읍내까지 30~40분 정도 걸렸지만, 두 시간 동안 버스를 기다려서 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던거야.
그러던 어느 날이었지.
여느 때와 똑같이 해가 저물쯤에 중필이가 스무권 정도 되는 만화책을 자전거에 잔뜩 싣고 오던 길이었나봐.
그런데 자전거로 느릿느릿 저기 현자교를 건너는디 자전거 뒤에서 '툭...툭...툭...' 이런 소리가 나더랴..."
미연과 지수는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는 서로의 얼굴을 잠시 확인했다.
지수는 벌써부터 소름이 돋는지 팔을 몇번 쓰다듬었다.
"그래서요?"
"그래서 중필이가 뒤를 돌아보니까 만화책이 떨어져 있더라는거야.
중필이는 만화책을 줍기 위해 자전거를 세우고 뒤를 돌아 걷는데 뭐가 이상하더라는거야.
만화책이 말이야... 몇 권이 떨어져 있었는데, 그것들이 하나같이 정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더라는거야.
게다가 책머리가 향하는 방향까지 똑같이 맞추고.....마치 누가 화투패 나열하듯 책을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 같다고 하더군.
중필이 말로는 겁나 무섭고 심장이 벌렁거려서 책을 줍다 말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는구먼."
"예? 뭔 아저씨가 그리 겁이 많대요? 책이 우연하게 그렇게 떨어질 수도 있는 거지, 빌린 책을 놓고 도망가면 어떡해요? 하하하..."
미연과 지수는 잠시 긴장을 완화시키려는 듯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김씨 아저씨의 이어지는 말에 그 둘은 곧바로 얼굴의 웃음기를 지울수 밖에 없었다.
"줍는 책마다 빌려올때는 볼수 없었던 진흙 같은게 살짝 묻어있었는데, 거기에 사람 손가락 자국이 찍혀 있더라는거야.
보름달빛이니까 확인했지, 안그랬으면 집에 들고와서 자빠졌을것이여."
김씨 아저씨는 김치 한점을 입에 넣더니 오물거렸다.
"그 뒤로 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졌어.
한번은 뒷집에 사는 형배라는 동생이 겪은 일인데, 그 친구는 읍내 가기전에 보이는 가까운 도살장에서 발골일을 해.
형배는 소를 잡는 날이면 그날 잡은 소의 생간을 들고와 이웃 사람들에게 나눠주는걸 낙으로 삼던 동생이었어.
그런데 형배가 소간을 들고 오는 날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마을 사람들이 다 알아차려버린다니까.
큼지막한 소간이 담긴 비닐 봉지에서 핏물이 조금씩 뚝뚝 떨어지니까 마을로 이어지는 길에 핏물이 보이면 사람들은 형배가 소간을
들고갔구나하고 알게 되지.
그런데 중필이 일이 벌어진 얼마 뒤에 저기 현자교를 지나던 형배한테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발골 작업이 오후 3시쯤 끝나서리 그날은 일찍 소간을 들고 현자교를 지나는데, 자전거로 뒤따라오던 형배 후배가 그러더래.
'형님, 기술도 좋네요. 오늘은 어쩐 일로 피를 한방울도 안떨구시네요' 형배가 뭔말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정말로 피가 한방울도 안떨어져 있더라는겨.
근데, 자세히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는겨. 딴데는 피가 없고, 그 현자교 위에만 피가 떨어져 있더라는거야."
"신기하네요."
"그렇지...신기한 일이지. 근디 정작 형배를 놀라게 한건 그게 아니었어.
그날 형배가 들고 간 것은 생간이 아니라 수육거리로 쓸 생고기였지.
핏물을 뺀 고기에서 그렇게 피가 떨어질리는 없고.....형배가 얼매나 놀랬겠는가..."
둘은 다시 한번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마른 침을 삼켰다.
"얼마 뒤에 동네 어른신이 한밤 중에 돌아가셨는데, 그 때 염을 하러 오던 장의사가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염을 할 생각은 안하고
우리한테 그러는거야"
[오메~~~ 차끌고 저기 다리 건너오다가 겁나 무서운 일 겪었당께요.]
[뭔데? 얼마나 무섭길래 죽은 사람 염하는 사람이 그리 놀랐어?]
[아니 글쎄....웬 여자가 내차 앞유리 창에 달라붙어서 '아저씨...나 좀 데려가유~~~' 이러는거 아녀!!!]
[뭐여? 그게 참말이여?]
[내가 졸음운전을 하다가 그 여자 땜시 깬 것 같기도 한디, 이게 너무 생생한단 말이여!!]
"우와~~~ 무섭네요."
미연과 지수는 동시에 두 팔을 쓸어내렸다.
"그 일로 마을에 흉흉한 소문이 조금씩 나돌기 시작했지.
뭣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질까 생각하다가 사람들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사건이 있었지."
"그게 뭔대요?"
"중필이가 그 일을 겪기 얼마 전에 저 다리에서 큰 교통사고가 하나 있었어.
버스가 다리 위를 지나는데 갑자기 염소 한마리가 튀어나온거야.
그런데 운전수가 순간 사람인줄 알고 놀래서 핸들을 틀어버린다는 것이 표지석처럼 세워놓은 돌덩이를 들이받고는
그만 논두렁으로 버스를 쳐박게 만들어버린거야
그 때 젊은 여자가 한 명 죽었어. 마을 여자는 아니고, 호구 조사하러 읍내에서 나온 공무원인데...
근디 그것이...조금 찝찝하게 죽었구만."
"어...어떻게요?"
"구조대가 버스 안에 갇힌 사람들을 모두 구조해서 사망자는 없었지.
글고나서 주변을 모두 정리한 다음 뒤늦게 크레인을 불러서 버스까지 들어올려 철수했지.
그러고 끝나는줄 알았는데, 며칠 뒤에 읍내에서 공무원과 경찰이 오더니만 어떤 여자를 찾고 있더라구.
사진을 내밀자 우리는 마을에 호구 조사하러 왔던 여자라는걸 금방 알아봤지.
그 여자가 실종되었다는거야.
우리야 그 여자가 우째 실종되었는지는 몰랐지.
그런데 며칠 전 사고 버스에 탔었던 한 친구가 그 여자도 그 버스에 타고 있었다고 말해준거야.
사람들이 웬 귀신의 장난일까 생각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자가 발견되었어.
그 때는 논에 물을 대는 시기라 버스가 쳐박힌 논에는 벼는 없고 물만 가득했거든.
물론 사람이 빠져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꾸욱 밟고 있으면 정강이까지 들어가기도 했어.
어떻게 죽었는지 알겠는가?"
"이런...."
"눈치 챘구먼"
"논에 묻혔군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몰랐던거구요."
"그려...버스 밖으로 튕겨나가 진흙 속에 파묻힌후 버스에 눌린거야.
밤에 사고가 났으면 좀 더 잘 살폈을터인데, 훤한 대낮에 사고가 나니까 방심했던거지.
결국 며칠 뒤에 그 논 주인이 흙을 고르다가 발견했다니까.
사고 충격으로 시체도 온전치 않은데, 진흙 속에 며칠 동안 잠겨 있었으니 그 상태가 어땠겠는가?
젊은 여자가 그래되고 저기 저 다리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사람들이 그냥 입다물고 있었겠는가?
결국 중필이랑 형배, 장의사 일까지 터진 다음에서야 사람들이 천도제라도 지내야 한다면서 여기저기서 난리였지.
그런데 그 죽은 색시 가족들한테 지내달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십시일반해서 용한 무당을 소개 받아 천도제를 지내줬지"
"그래서 그 뒤로는 아무 일도 없었나요?"
"그런데...굿을 하던 중에 무당이 이상한 말을 하는거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더니만 집을 잘못 찾은 것 같다고 하더군."
"그게 무슨 말인데요?"
"그러니까 우리도 몰라서 물었지. 지금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그러니까 무당이 하는 말이... 여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알려준 그런 사주를 가진 귀신이 없다는거야"
"무...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그러니까...천도제를 지낼 귀신이 그 여자가 아닌거야...다른 귀신이 있었던거지"
"그럼...그 귀신이 누...누구예요?"
"모르지...무슨 귀신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우린 무당한테 물어본거야. 그 귀신이 누구냐고.
그랬더니 그 무당이 엄청 심장 떨리는 얘기를 하더라구..."
둘은 지금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굳은 자세로 김씨 아저씨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기에 또 있대. 다른 시체가..."
"예???"
"후...그말 듣고 다리 위에서 천도제 지켜보던 몇몇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니까"
김씨 아저씨는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더니 커다란 깍두기 한개를 입에 넣고는 우걱우걱 씹으며 말을 이었다.
"이장이랑 마을의 건장한 남자 몇몇이서 다리 아래를 샅샅히 뒤졌지.
알겠지만 저 다리 밑이 갈대로 뒤덮힌 풀숲이라 뭘 찾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냐.
답답해서 어느 세월에 찼겠는가? 그래서 이장이 예초기를 들고 와가지고 싸악 밀어버린거야."
"그..그래서 찾았어요?"
"찾았어. 다리에서 하류쪽으로 30여미터 떨어진 곳에 사방댐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여자 시체가 발견된겨."
"헐...대박. 무당 말이 진짜였네요."
"시신이 많이 상해가지고 차마 눈뜨고 볼수가 없었구만.
옷차림과 얼마 남지않은 긴 머리카락 아니었으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별할 수 없었을거야"
"그 사람도 버스 사고로 죽은 사람이예요?"
"그러니까 우리도 그런줄 알았지. 그런데 경찰이 시신을 보러온 뒤 얼마 안돼서 그 사방댐 근처가 난리가 난거야.
사이렌 울리고, 경찰차 오고, 형사들도 오고, 무슨 과학수사대란데서도 와서 여기저기 다 헤집고 다니더라니까."
"예? 그..그럼 살인 사건이예요?"
"옆 동네에서 오래 전에 실종 신고된 여자라는데 부검결과 타살 흔적이 발견되었다는거야. 돌 같은거로 머리를 때려 죽였다지 아마"
"헐....살해되서 유기된거군요."
"그래....얼마 후 범인이 잡혔다는 얘길 들었지...
얼마나 한맺힌 원혼이지 모르겠지만 그 사방댐에 걸려 떠내려가지도 못하고 그렇게 애타게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것 같아."
"무섭지만 한편으로 슬픈 얘기네요."
"그 뒤로 저 다리에서는 더 이상 기괴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어."
"후...저 작은 다리에 사연이 참 많았네요."
그제서야 미연과 지수는 고개를 들어 어둠 속에서 멀리 보이는 현자교를 바라보았다.
"어때? 이 야밤에 현자교 한번 건너 볼텐가?"
"예?? 아저씨 저희 무서워서 못가요."
사색이 되어 손사래를 치는 미연을 보며 껄껄 웃던 주인 아저씨는 남은 한 잔의 막걸리를 들이키고는 마당 가운데 놓여진 평상에서 일어섰다.
"난 먼저 잘테니까, 더 놀다들 들어가."
그는 평상에서 조심스레 내려와 불 켜진 안방으로 향했다.
지수는 뭔가를 골돌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귀신은 범인을 알려주지 않는걸까?"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부터 장의사 아저씨한테 날 죽인 사람이 누구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됐잖아."
"그러게 듣고보니 그렇네. 무당한테 얘기할 수도 있는거고"
"왜일까? 왜 알려주지 않은걸까? 우리 무서우라고 아저씨가 지어낸 얘기 아냐?"
지수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지수는 평소 주변으로부터 검색의 여왕으로 통하는 구글링 고수였다.
"현자교 살인사건 치니까 안나오는데? 주인 아저씨가 뻥친건가?"
미연도 지수의 행동을 거들었다.
"동네 이름도 넣어봐. 변사체..이런 말도 넣어보고."
몇 번에 걸친 페이지 넘김을 끝내자 지수는 잠시 입을 삐죽거렸다.
"비슷한 사건이 있긴 있었네. 이 동네는 아니고 독자골이라는 동네야. 여기서 멀지 않은가봐.
같은 군에 속하는 곳이네. 노부부만 살던 집에 혼자 세들어 살던 여자가 실종됐는데, 얼마 뒤 변사체로 발견되었대.
그런데 오래된 사건인데? 30년도 넘었어."
"뭐?"
"주인 아저씨는 마치 얼마 전에 일어난 일처럼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육십줄을 바라본다던 친구는 그럼 구십줄이라는거야?
주인 아저씨도 구십줄? 뭐가 안맞잖아. 게다가 또 이상한게 있어."
"또 뭐?"
"사건이 미궁에 빠졌대. 범인이 아직 안잡혔나봐. 아까 주인 아저씨는 범인이 잡혔다고 했잖아."
지수의 말을 듣고 미연은 잠시 이마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에이...그럼 아저씨가 옛날 일을 가지고 자기가 겪은 것처럼 뻥친거네."
"그런가봐. 아마 부모님이 겪은 일을 적당히 꾸며서 얘기한 것 같아. 그런데 얘기가 참 실감나긴 하다."
잠시 후 미연은 장난끼가 발동했는지 조용히 지수에서 다가서더니 숨죽인 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혹시 그 노부부 집이 여기가 아닐까? 그리고 노부부에겐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망나니같은 아들이 그 여자를 겁탈하려다가 살해하게 된거야.
그러니까 그 여자는 남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죽게 되었던거지.
범인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잖아. 다리밑, 풀숲, 사방댐...시신 발견이 어려운 지형지물. 바로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지.
그리고 귀신 얘기는 마을 사람들이 실제 겪은거고, 아들은 한참 뒤에야 노부부한테 도시괴담 정도로 전해들은거고..어때 그럴싸하지 않아? "
"미연아.. 무섭게 왜그래? 그리고 조용해...아저씨 들을라...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 사건이 일어난 곳이 이 동네가 아니라니까"
"하하..쨔식~~겁먹었냐? 농담이야."
미연은 마치 친오빠처럼 한 팔로 지수의 목을 휘어감더니 다른 손으로 머리를 토닥거렸다.
"너 진짜 별꼴이다. 정말... 하하"
그 둘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신경쓰였는지, 안방의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둘을 지켜보던 하나의 눈이 안방 문과 함께 조용히 닫혔다.
미연과 지수는 평상에 벌러덩 눕더니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맑은 하늘의 별자리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아직 미연과 지수는 어두운 처마 밑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독자골 27번지]가 새져진 썩어가는 나무 문패의 존재를 모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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