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억. 헉. "
깨고보니 꿈이더라는 식의 반전을 기대해보지만 이미 틀렸다.
우준이 떨리는 손을 걷어내자 손자국이 선명한 여자의 목이 힘없이 꺾였다.
" 어어어. 나, 나나미? 나나미? "
평소 피 빼고 살 째고 뼈 바르는 걸 업으로 삼아온 만큼 담이 강한 우준이었지만
방금 전까지 소리 치고, 몸싸움하던 연인의 죽음 앞에서 태연할 수는 없었다.
" 나나미! 촛또 하나시떼미로! 난데모 이이까라...! "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보지만 이미 죽은 닭을 만지는 느낌이다.
몸이 전혀 균형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 아, 씨팔...! 나나미! 어이! "
ㅡ...
춥지는 않지만 묘하게 싸늘한 방.
네 사람이 나란히 앉을만한 크기의 소파 위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끝과 끝에 앉았다.
이미 이야기가 적당히 오고 간 듯 생각에 잠겨있다가, 여자가 입을 열었다.
" 우리 사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
" 무슨 말이야, 그게. "
" 일본식으로 돌려말하면 알아듣기 힘들다고 했었지, 우준 씨. 솔직히 말해서
나, 우준 씨와 가정을 꾸린 내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어. "
" 아니, 그건 또 뭔 말이래? "
" 미안. 더 확실하게 말할게. 우준 씨하고 이제 헤어지고 싶어. "
" 뭐? "
" 헤어지자구. 처음엔 당당한 태도에 반했는데, 오래 만나볼수록 당당함보다는
조금 사람들을 함부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어. "
" 너한테는 안 그러잖아. "
" 나한테는 잘 해줬어. 맞아. 근데 지구상에 사람이 나 혼자인 것만은 아니야.
식당에서 종업원을 대할 때, 일하며 손님을 대할 때, 우준 씨를 보면 꼭 딴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게 다른 사람들이 우준 씨를 생각할 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
" 다시 생각해줘. 잘 할게. "
" 으으응. 아니야. 나도 우준 씨가 거칠지만 적어도 내게는 상냥하다고 생각해서
몇 십번이나 마음을 고쳐먹었었어. 하지만 오늘은 결심이 섰어. 이별을 이렇게
갑작스레 말하게 되서 미안하지만 이럴 땐 단호해야 한다고 생각해. "
" 내가 남들한테 소리 지르고, 가끔 싸워서 불안했다면 미안해.
내가 욱하는 성질도 있고 입도 거칠잖아. 워낙 이쪽 업계 사람들이 기가 세서
일부러 그러는 부분도 있어. 하지만 네가 문제라고 한다면 고칠게. "
" ... 사실 그것뿐만이 아냐. 오빠, 저번 달 카드 사용내역을 우연히 봤어.
또 그 술집이었지? "
" 아... 본거야? "
" 여자를 부르는 술집이잖아. 그땐 거래처와 간 거고 노래만 불렀다고 해서
넘어갔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라. 친구와 밥 한 끼 하는 곳치고는 무대가 틀리잖아. "
" 미안해. "
" 미안하다는 말, 많이 믿었고 많이 참았어. 바로 바로 사과하는 점은 좋아.
하지만 항상 사과만 하는 남자와 미래를 설계하고 싶진 않아. "
" 다시 기회 주면 안 되겠냐. "
" 말하다보니 홀가분해지네. 차라리 잘 됐다는 느낌이야. 오빠, 좋은 여자 만나.
난 자격 미달이야. 식육점 내는데 빌린 융자 갚기도 빠듯한데 그런 술집이라니.
비지니스? 그렇겠지. 그마저도 이해해줄 수 있는 마음 넓은 여자를 만나... "
" 나나미. "
" 나, 갈게. 이유... 더 말하게 하지 말아줘. 오빠는 내게 잘 해줬어.
날 위해서 더듬더듬 배운 일본어가 유창한 것만 봐도 눈물이 나오려고 해.
갈게, 놓아줘. 이거 놔. "
" 내 얘기 좀 들어봐! 얘기 좀 하자니까! "
" 놔, 이거 놓으라니까. "
" 안 싸운다니까! 앞으로 돈도 아끼고 융자도 갚을게! "
" 왜 이래! "
" 이유가 그게 뭐야, 다 핑계야! 내가 부끄러운거지? 파리 날리는 식육점 사장 마누라
하기 싫은거지? "
" 우준 씨! 이거 놔! 더 할 말 없어. "
" 너도 문제 있는거야, 너도 요즘 그 학교 선생인가 뭔가 하는 놈이랑 자주 카페에서
만난다며, 내가 모를 거 같았냐? 한국어를 가르쳐 줘? 나한테 배우면 되잖아! 왜
그 기생 오래비같이 생긴 놈한테 꼭 배워야 해? 아주 하하호호 웃고 분위기 좋더라고
주위에서 나한테 몇 번이나 일러바치더라! "
" ... 그런 사이 아냐. 그냥 한국어만 배웠어. "
" 나랑 깨져야 그 놈이랑 잘 될 거니까 입 걸걸하고 고기나 만지는 나 같은 놈은
버리는 거지? "
" 그런 거 아냐. 제발 우리 아름답게 헤어져. "
" 그 선생 새끼, 너 애인 있는 거 알아 몰라? 내가 죽사발 내려다가 참았... "
" 우준 씨! "
" 못 가. 너 못 나가. "
" 하아...! "
" 돈 잘 벌고 잘 생긴 교사, 나라도 반하겠다. 하지만 의리란 것도 좀 생각해 봐. "
" 오빠가 싫어졌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게 하지 마. "
" 이미 말하고 있잖아! 아무 사이 아니라는 그 사람이랑 잘 될 게 뻔하고!
어떻게 보내란건데! "
" 정말 최저야! "
" ... 뭐? "
" 그 사람, 좋은 사람이지만 약혼자가 있어. 난 사랑해봤자 짝사랑일거야.
내가 사랑했던 건 오빠였지만 이젠 아니야. 그래서 나 일본으로 돌아가. 날짜도 잡았어.
일본으로 돌아간다구! 이제 됐어?! 잘 지내! 진짜 마지막이야! "
여자는 가방을 집어들어 남자를 밀쳐낸 뒤 방을 나서려 한다.
남자의 큰 손이 여자의 어깨를 잡는다.
여자는 있는 힘껏 저항하다 통하지 않자 손을 잡고 깨물어버린다.
남자가 뺨을 때릴 듯 손을 번쩍 들자 여자가 놀라 눈을 질끈 감는다.
다행히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눈을 보이며 말한다.
" 누군가... '그녀'가 왜 일본에 돌아갔냐고 하면 있지, '화분증' 때문이라고 해줘.
'카훈쇼-'노세이다요. "
떠나간다, 아주 가버린다, 어어어.
남자의 마음이 요동친다. 사고가 마비된다.
내 거, 내 여자, 내 물건, 안 돼 안 돼,
남자의 눈앞이 깜깜하다, 그녀 없는 미래는 생각할 수도 없어,
내 반쪽에서 어쩌면 전부인데, 없으면 안 돼,
뭐해, 잡아, 간다고? 절대 못 보내.
보낼바에야, 딴 놈 줄 바에야, 어어어,
잠깐만, 진짜 왜 안 기다려주는데, 배신자,
이건 배신이야, 지 마음? 내 마음은?
그래, 넌 떠날거면 떠나라, 난 못 보내니까,
잡진 못 해도 보내주지도 않을테니까,
" 카훈쇼? 씨팔, 장난하냐-! "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날더니,
다른 그림자와 포개졌다.
요란한 어둠이 돌더니, 적막과 함께 내려앉았다.
ㅡ
" 끄으으. "
죽은 자를 드는 건 산 자를 들 때보다 무겁다.
우준은 겨우 계단을 내려와 그녀를 바닥에 다시 눕혔다.
" ... "
발목을 잡고 끌자 그녀의 손이 만세를 외치며 질질 끌려왔다.
머리카락도 물걸레 마냥 바닥을 닦으며 따라왔다.
" 허억. 허억. "
몸에 식은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심장이 빠르게 뛰는지라
더위와 오한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커졌고
신경이 곤두서서 작은 소리에도 흠칫 놀라는 그였다.
가쁜 숨을 쉬며 냉장고 속 술병을 꺼낸다.
도수가 오십 도가 넘는 독주를 컵에 아무렇게나 쏟아붓고
수돗물을 조금 받은 다음 한 입 들이마셨다.
" 케헥, 켁. "
높은 도수 탓에 목이 타오르는 듯 했겠지만
조금 진정되기도 전에 한 컵을 다 비워버렸다.
곧 열감이 눈알까지 올라왔지만 남은 술을 컵에 또 부은 우준은
심호흡을 시작했다.
" 후우우... "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보면 전혀 진정되지 않은 모습이 티가 났지만
한 컵을 더 들이킬 즈음엔 술기운 탓인지 어느 정도 떨림이 멎어있었다.
" ... "
가장 날이 잘 든 칼, 손에 익은 익숙한 칼, 흰장갑, 앞치마ㅡ.
몇 일만에 작업장 불을 키고 기계 전원을 올린다.
" 난데모나이... 난데모나이... 네에, 나나미 짱. "
하나둘씩 준비가 되어가는 기계들과 칼 가는 소리가 내는 소음 속에
우준의 혼잣말이 흡사 주문처럼 깔렸다.
우준은 돼지나 소 지육을 걸어놓을 때 쓰던 천장 갈고리를 끌고 왔다.
대동물도 걸어놓을 수 있는 고리니 사람 하나 다는 것쯤은 무리가 없었다.
발을 꿰어 거꾸로 매단 뒤 칼로 큰 핏줄이 지나가는 부위 부위를 저며내었다.
끈적한 핏물이 조금씩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쭈룩쭈룩,
" 으아아악... "
그걸 바라보다 갑작스레 맨정신이 돌아오는 걸 느끼자
우준은 머리를 감싸쥐며 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후회했으며, 반성했으며, 무섭고, 막막한 기분.
" 왜... 왜... "
나나미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고 자신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하나도 없어, 떠나간 자도, 지어버린 죄도,
모두 널 심판할 것이다, 이 살인자야! 아니야, 아니야,
씻어, 그리고 지워, 없던 일로 해, 빨리!
절망의 춤, 만취의 노래,
눈물과 피가 강처럼 흐르고.
끼릭, 끽, 수도꼭지를 돌리자 바닥에 널브러져있던 호스가 이리저리 춤을 춘다.
물줄기가 핏물과 섞여 바닥의 홈을 타고 배수구로 흘러들어간다.
그 사이 나나미의 육신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이 되어 하얗게 빛났다.
베어낸 부위로 물줄기가 향했고 붉은 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세척은 반복되었다.
" 나나미. 조금만 참아. "
우준은 그녀를 갈고리에서 떼어낸 뒤 작업대 위에 눕혔다.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우준 씨'하고 웃어줄 것만 같다.
우준은 비계를 담아낼 쓰레기통에 갑작스레 구토를 해댔다.
술기운으로 감정을 속이는 걸 용서치 않겠다는 듯 몸이 마신 것을 토하게끔 했다.
마신 건 술뿐이니 노란 위액까지 게워내고서야 구토가 멎었다.
" ... 끄윽. "
신물이 올라오는 트름과 함께 입술을 아무렇게나 닦아낸 우준은
골절기를 작동시킨 뒤 돼지 앞다리며 뒷다리를 담궈놓을 때 쓰던 커다란 대야를
몇 개씩이나 바닥에 늘어놓았다.
맹렬한 속도로 진동하는 직선의 칼날 위로 그녀의 가느다란 왼팔이 지나갔다.
서걱, 그 다음엔 오른팔이, 서걱, 그리곤 허벅지가 지이이이-, 서걱,
또 한 허벅지가 지이이이-, 서걱, 마침내 목이 데구르르.
" 웨에엑! 우웨엑! "
헛구역질이다. 위액조차 나올 재간이 없으니 꿀럭꿀럭,
아무것도 안 나오는 토를 한다.
" 허억. 흐윽. 커흑. "
우준은 2층으로 뛰어올라가 티비 아래 서랍을 연다.
연고, 손톱깎이, 건강보험증 따위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채 노란색 본드 하나를
찾아낸다. 작은 부피로 접혀져있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도 함께 집어든다.
" 허으윽. 씨팔, 씨팔. "
봉투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낸 후 두어번 털어내곤
본드를 쭉 짜넣은 우준은 급하게 봉투를 뒤집어쓴다.
- 후웁, 후웁, 후웁...
봉투가 점차 습기로 차오르더니,
우준이 방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도 잠시 죽었다가 돌아오려는 모양인지.
ㅡ...
" 흐으음, 흐음. "
콧노래가 들려온다. 1층 작업실이다.
대야마다 몸통, 팔다리, 제일 작은 대야에는 머리가 담겨있는데 모두 빨갛게
배어나온 핏물로 가득하다.
우준이 칼을 들어 능숙하게 가죽을 가른다.
노란색 지방까지 노련히 걷어낸 다음 흰 막을 도려내자 내장과 뼈가 드러난다.
노린내가 스멀스멀 피어오르지만 우준의 코에는 꽃향기처럼 느껴질 뿐이다.
매일 돼지와 소를 가르고, 지방을 쳐내고, 고깃국물을 끓이던 그였다.
" ... "
기계처럼 뼈와 살을 발라내다가도 흠칫 눈동자가 흔들리며 총기가 돌아오는
우준이었지만 그럴 때면 고개를 세차게 저어버리고, 그마저도 통하지 않으면
다시 옆에 놓여진 봉투를 뒤집어쓰고 몇 번이나 숨을 적셨다.
가죽은 가죽대로, 살점은 연육기를 통해 길쭉한 국수가 빠져나오듯 갈려나오고,
내장은 곰솥에 들어가 펄펄 끓고 있었다. 휴지통엔 머리카락과 비계가 넘쳐났다.
마침내 커다랗고 꽉 찬 봉투가 몇 개 작업대 위에 올려져있을 뿐이었다.
" ... "
어느샌가 우준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본드에 취하지 않았지만 눈은 총기를 잃었고, 눈가는 어느새 움푹 들어간 채
퀭하기 그지 없었다. 꼬챙이를 이용해 연육기며 육절기에 끼여있는 고깃덩어리를
쑤셔대고 있는 모습이 흡사 시체를 쪼아먹는 까마귀처럼 음침해보였다.
칙칙칙. 알콜 섞인 물을 뿌린 뒤 소독한 행주로 작업대며 기구에 밴 물기를
닦아낸다. 행주에 붉게 묻어나는 것의 정체는, 그러나 인지하기도 전에 벌써
행주는 쓰레기통에 들어가있다. 쓰레기통에 씌워져있던 봉투를 빼내어 묶은 뒤
작업대에 올려놓고 보니 어마어마한 양이다.
장사 준비였다면 박수 받을 일이지만.
이건 장사와는 거리가 먼,
비극의 준비물일뿐.
우준은 열 시간 가까이 아무 것도 먹고 마시지 않은 것에 대한 허기와 갈증이
갑작스레 밀려오자 냉장고를 열고 닥치는대로 입에 쑤셔넣었다.
그러다 어디선가 섞여든 비계냄새를 맡자마자 다시 속을 게워내었다.
노란 위액이 목구멍을 한없이 쓰라리게 만들었다.
주머니를 더듬거려 차키를 집어든 우준은 남은 힘을 짜내어 봉투를 하나씩
가게 밖에 세워진 차 짐칸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오간 끝에 차 시동이 걸리더니,
한 사람이 탔지만 두 사람분의 중량이 실린 차가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ㅡ...
# 라디오 날씨 정보입니다. 올해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꽃가루 알레르기를 주의하셔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습도와 온도는 포근할 것으로 보이나 봄나들이는 자제하셔야겠습니다.
# 올해는 꽃가루가 이상하게 노랗지가 않고 아주 붉어요?
# 네, 그래서 더 기분 나쁘다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꽃가루가 아니라 발색의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 아무쪼록 우리 시청자 여러분들께서는 봄 대비 잘 하셔서 무사히 계절을 넘기시기
바라겠습니다. 다음 방송 때 뵙겠습니다. 저희는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찾아뵙...
라디오가 갑자기 꺼진 이유는 자동차 시동 자체가 꺼진 탓이었다.
울창한 숲이 둘러싸고 있어 오로지 하늘의 구름만이 내려다볼 수 있는 어느 산 속.
이 곳은 우준의 먼 친척이 묻혀계신 곳으로 주위 마을이래봤자 농사 짓는
몇 가구뿐인 깡촌 중의 깡촌이었다.
논밭이나 마당에서 쓰레기 태우는 건 일상다반사인 곳이니만큼
산에서 불을 피워도 그러려니 할 만한 동네였기에 두 시간 반씩이나 걸려
굳이 이 험지를 찾아온 것이다.
파놓은 구덩이 속에서 휘발유와 함께 활활 타오르는 내용물들.
역한 고깃냄새가 퍼진다.
불꽃이 일으키는 열기와 불빛이 우준의 얼굴에 달라붙는다.
그녀가 입고있던 옷가지와, 그녀와 함께 찍었던 사진들,
그녀가 써준 손편지ㅡ... 나나미라는 한 사람이 녹아들어있다.
우준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법을 터득한 사람처럼
그저 무념무상의 상태로 불꽃을 바라본다.
술기운과 약물의 힘을 빌려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마음을 버무려놓은 까닭도 있을게다.
그러나 평온은 그리 오래가지 못 했다.
" 카훈쇼 "
...?!
우준의 동공이 커지며 검은자가 사방으로 떨렸다.
내가 말한건가,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한 적이 없다.
말한 적이 없는데 혼잣말이 들릴 리 없다.
" 카훈쇼 "
그 소리에 우준은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얼얼했지만 평정을 찾을 순 없었다.
" 말이 되냐고, 무슨 생각하냐, 정신 차려! "
환청이 분명했다. 잊기 위해서 들이마신 본드가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이야.
묘하게 여자의 목소리라서 더욱 신경쓰였다.
얼마나 태웠을까, 남은 잿가루와 뼛가루를 흙과 함께 삽으로 뒤섞어
포대에 담자 한 포대가 가득 찼다.
어깨에 짊어진 채 풀 밟은 자국을 따라 내려오던 우준은
사나워 보이는 개 한 마리와 마주하자 발이 얼어붙었다.
으르르 거리는 소리 하나 없지만 우준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개.
" 워이, 저리 가. 저리 가! "
" 카훈쇼 ! "
" ?! "
" 카훈쇼! 카훈쇼오! "
귀의 착각이 아니다, 그 확신과 동시에 개는 송곳니를 보이며 우준을 향해
달려들었고 우준은 그만 포대를 놓쳐버린 채 뒤로 넘어졌다.
" 으아아악! "
개가 자신을 물 것이라 생각하고 팔다리를 휘젓던 우준은 그만 바지를 적시고야 말았다.
아무 일도 없단 걸 자각하고 눈을 게슴츠레 떠보니 개는 포대에서 흘러나온 잿가루를
핥아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 이런 씹... "
우준은 약이 차오르는데다 저 포대를 놓고 가는 건 '내가 살인자요'하고
자백하는 꼴인지라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살며시 숲가에 떨어져있던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들었다.
부러진 부분이 창끝처럼 날카로워서 한 방에 급소를 노리기엔 제격이었다.
살 찌르고 자르는 일은 눈 감고도 해내는 우준이 놓칠 리 없다.
세상천지 모르고 가루를 핥던 개는 단 한 방에 배가 뚫려 죽어버렸다.
허파를 찔렸는지 끽 소리 하나 내지 못 했다.
" 개새끼야... 존나 놀랬잖아. "
포대를 수습하여 다시 발을 내딛는 순간,
" 카훈쇼 "
... 꼼짝할 수 없다. 소름이 땅 밑에서 손을 내밀어 발을 꽉 붙잡는 듯 하다.
" 카훈쇼 "
굳어버려 말을 듣지 않는 목을 억지로 비틀어 뒤를 쳐다본다.
개는 죽어버린 모습 그대로 누워있는데, '카훈쇼'하는 소리만큼은
아직도 들려오고 있었다. 화분증, 화분증 때문이라고,
카훈쇼노세이다요ㅡ.
" 흐흐흐. 미친. 본드가, 사람 미치게 하네. "
카훈쇼-,
카훈쇼ㅡ.
" 가. 가자. 내려가자. 씨이팔. 배고프고 졸려서 그래.
그러니까 환청이지, 뇌가 착각하는거지, 좆같게. "
한 발짝, 한 발짝이 꼭두각시 인형처럼 삐뚤빼뚤이었다.
ㅡ...
신경쇠약으로 인한 심한 환청 증상.
스스로를 그렇게 진단한 우준은 외출도 않은 채 집에 틀어박혀있었다.
묘하게 붉은 꽃가루가 전국을 뒤덮는 탓에 어느 방송에서도 외출을 권하지 않는 탓도 있었다.
환기조차도 최소한으로 실시하라는 재난 문자가 올 정도였으니.
간혹 지인들이 전화로 나나미의 근황을 물을 때면 '꽃가루' 때문에 누워있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 ...그만. "
귀에는 귀마개와 휴지를 틀어넣은 채 그도 모자라 손바닥으로 귀를 감싸쥐고
있지만 우준은 '카훈쇼' 하는 목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샤워를 하다가 샤워기가 스피커라도 된 것 마냥 '카훈쇼'
텔레비전을 키면 화면 속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쳐다보며 '카훈쇼'
결국 샤워도 텔레비전 시청도 포기한 채 집에서 눈과 귀를 감고있었다.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에 우준은 창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텁텁하지만 얼마만의 바깥 공기인가. 살짝 느껴지는 바람만으로도 눈물이 일 지경이었다.
조금 더 열어보자, 좋은걸, 조금 더 괜찮겠지, 에라, 잠시만 확 열어보자.
창문을 활짝 열어보니 이웃집의 지붕이며 벽이며 거리 위 아스팔트까지 온통
새빨간 꽃가루가 내려앉았다. 젠장, 까짓거 그냥 나가서 돌아다닐까...
뭐 어때, 마스크 쓰면 괜찮겠지, 우준이 고민하던 그 순간.
꽃가루가 스믈스믈 모여들기 시작했다.
" 환청이 아니고 이젠 환각이야? 환각? "
우준이 절망하는 동안에도 꽃가루는 모여들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붉은 입술로 변하더니,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카훈쇼'
" 크아아악! "
쿵! 쿵!
벽에 머리를 계속 찧다 환청이 겨우 멎어들자 우준은 고개를 홱 돌렸고,
창 밖 거리에 서서 우준을 쳐다보고 있던 행인과 눈이 마주쳤다.
" 뭘 쳐다봐, 씨발, 뒤지고 싶냐, 개새꺄! "
손에 잡히는대로 물건을 던져대자 행인은 황급히 사라졌다.
우준은 이마에서 뜨끈한 기운이 느껴지자 손을 대어보았다.
쓰라림과 함께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이마를 살피기 위해 거울 앞에 서자 핏물만큼이나 붉게 충혈된 눈이 가관이었다.
나나미를 죽인 날 이후 먹고 마시는 건 죄다 토하고 잠도 제대로 잔 적이 없는
탓이다. 우준은 이러다간 자신도 죽는게 아닐까하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이러다간 나도 죽어, 죽기 싫은데, 그 마음 속 울림이 우준을 재촉했다.
죽기 싫으면 뭐라도 해야한다.
우준은 마침내 집 밖으로 나왔다.
반쯤 남아있던 자동차 기름이 다 떨어져 주유 경고등에 불이 들어오고나서야
차는 산길에 멈췄다. 차를 대놓고도 수 시간을 헤매며 걸어올라가야 했다.
저번의 깡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높고 우람한 산이었으나 이 산 역시 붉은 꽃가루 천지였다.
그럼에도 이 산을 찾게 된 건 귀신 본다는 사람들 귀신 떼주기로 유명하다는 이 곳의 무당을 찾기 위함이었다.
마침내 도착하여 글씨가 잔뜩 붙은 문 앞에 섰더니,
" 혼자라디만 와 둘이고? "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말을 걸어 놀란 점도 있지만 말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터라
우준은 반문했다.
" 혼자 왔는데요? "
" 뭐꼬? 머스마가? 아인데, 가스나 기운인데? 들어와바라. 퍼뜩! "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우준을 보나 싶더니 무당은 허공을 보곤
코와 입으로 토사물을 왈칵 쏟아내었다.
" 이 자슥, 사람이 아닌 것을 업고 왔노, 대체 뭔 지랄을 했길래 저 가스나는
팔도 다리도, 이목구비도,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이 뒤죽박죽에! 살과 뼈가죽도
지멋대로, 핏물도 비계도 지멋대로, 꾸웨에엑. 신령님, 신명님, 아, 으아악,
귀신님! 기싱니임, 키익... 킥! "
무당은 목을 부여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우준은 어쩔 도리를 모른 채 바닥에 엎드려있는데, 문이 열리더니만 꽃가루 섞인
바람이 불어들어왔다. 그러자 무당은 묶었던 머리가 풀리더니 마치 누군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위로 벌떡 일어났다.
" 끄으으 "
그러나 눈이 홰까닥 돌아가 흰 자만 동그란 것이 이미 넋이 나가보였다.
우준은 과연 자신이 보는 것이 생시인지 환각인지 분간할 수 없고
단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 한 괴이한 현상에 질겁하여 밖으로 뛰쳐나갔다.
신발, 지갑, 휴대폰... 챙겨야 했을 물건들이 어디론가 달아나버렸다는 걸
깨달은 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고립됬다는 것을 깨우친 뒤였다.
" 허억. 허억.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뛰어오며 펄펄 날린 꽃가루 까닭인지
달빛 한 점 들지 않는다. 오로지 맨발과 맨손의 감각으로 꺼칠꺼칠한 나무와
꽃가루 덮힌 흙바닥을 더듬거리며 나아갈 뿐이다. 그러다 잘못 딛노라면
한바탕 데굴데굴, 생채기가 잔뜩 난 몸을 억지로 일으키면 발목이 절뚝거린다.
" 가자. 가자. "
우준은 자신을 향해 뇌까리며 발을 질질 끌어본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 그러니 가야한다.
한 발짝, 두 발짝, 세 발짝에 다시 발 디딜 곳을 찾지 못 하고
떨어지다 발을 헛디딘다. 무릎이 엉뚱한 방향으로 착지한 탓에
힘줄이 뒤틀리는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내지른다.
" 엉엉. "
매 맞은 아이처럼 울고 불며 이젠 두 발이 아니라 한 발과 두 손으로
더듬더듬 기어간다. 어어어. 보인다. 빛이다. 분명히 빛이 보인다.
꽃가루가 일으킨 붉은 안개 속이라 희미하지만 분명 빛이다.
아주 빠알간 빛이다. 산장일까.
손을 미친듯이 휘저어 바닥을 질질 끌며 나아간다.
빛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점점 가까워진다.
지친 줄도 모른 채, 손바닥이 다 까져 피범벅이 된 줄도 모른 채
정신없이 기어오고나니 [대피소]라고 쓰여진 스티커가 붙어있다.
" 살았다... "
문을 열자 전등은 어디에도 달려있지 않으나 붉은 빛이 묘하게 비추고 있는 방.
고작 이 정도의 빛이 그 거리에서 보였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곳에서 쉬면서 구조를 기다리면 되겠지, 그게 최선이다.
우준은 소파로 다가간다.
힘을 짜내어 그 위로 기어올라간다.
" 콜록, 콜록! "
손으로 소파를 쓸어보니 꽃가루가 한가득 묻어나온다.
별 수 없다며 힘없이 손을 내리고나니 그제서야 아까 비틀린 무릎이 끔찍히도 아파온다.
" 콜록. 콜록. "
텁텁한 공기, 희미한 불빛, 선명한 고통ㅡ.
'쇼오, 카훈쇼오-... 카훈쇼- 카훈쇼ㅡ'
" 크흐흑. 콜록. 크히히. "
언제부턴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우준은 똑똑히 보면서도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벽, 가구, 바닥, 곳곳에 묻어있던 꽃가루가 스믈스믈 모여들어
저마다 살점이 되고, 뼛조각이 되고, 핏방울이 되고, 기름이 되더니-...
꾸물꾸물 기어와 점차 덩어리를 빚고, 하나로 꿰매어져 여인의 형상을 이루었다.
손톱과 발톱에 새빨갛게 꽃물을 들인 나체의 여인이 한발짝씩 우준에게로 다가온다.
" 크흐흐흐, 나나미, 카훈쇼노세이다요네? 카훈쇼, 카훈쇼노세이카또! "
" 히히히, 헤헤헤, 칙쇼, 칙쇼오! 다레가, 다레가 춋또 다스케떼쿠레! 히이익! "
ㅡ...
지독히도 불어오던 꽃가루가 신기하게도 멎은 날의 아침.
오랫만의 산행을 즐기던 두 중년의 사내가 대피소에 도착한 참이었다.
" 어휴! 겨우 왔네. 여기 폐쇄된 지 오래라며? 그래도 쉬어갈 수 있게 열어놨다더라고.
보온병에 물 남았으면 좀 줘봐. 목이 칼칼한게, 녹차 한 잔 해야겠어. 어라? 누가 와있네? "
" 물 있지. 왜 안 들어가? 가방 무거워. 빨리 들어가. "
" 아니 아니. 기다려. "
" 왜? 사람 있는게 뭐 어때서? 아, 뭐해- 들어가라니까. "
" 아니, 조금 이상해. 아니지? 많이 이상해. 자네가 봐봐. "
" 왜? 뭔데? 어이쿠, 씨벌! 저 사람 뭐야? "
" 시체 아냐? "
" 에이씨! 미쳤어? 눈 뜨고 자는 거겠지. 저기요! 아저씨! 자요? 자냐구요! "
" 근데 왜 팔다리가 저렇게 꺾여있어? "
" 가서 흔들어보자 "
" 어허- 가지말어. 죽었다니까, 내 말이 맞다니까? "
" 나와봐, 내가 흔들어볼게. "
" 으어어, 이 사람아, 들어가지마, 어쩌려고? "
" 뭘 어떡해, 죽었으면 119 불러야 될 거 아냐? "
" 그냥 가자구, 다음 대피소 가서 쉬면 되잖아. "
" 이 사람아. 사람이 죽었으면 신고해야하고, 안 죽었으면 살려야 할 거 아니야! "
" 아이고오, 미치고 팔짝 뛰겠네, 그냥 가자니까! "
" 놔 봐, 좀! 아저씨! 아저씨! 괜찮아요? 아저씨! "
용기를 낸 사내가 흔들어댔지만 누워있는 남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상처가 전혀 없었지만 손발가락과 관절이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뒤틀리고 꺾인지라 기괴하기 그지 없었다.
" 아니... 대체 어쩌다가 이런 지경이 된 거야. "
그 순간 소파 위 남자의 목이 우두둑 한 바퀴 돌더니,
눈 코 입 귀에서 검붉은 피를 콸콸 쏟아내며 입술이 귀에 걸릴 듯 히죽헤죽 웃기 시작했다.
" 카훈쇼노-오카게다! "
ㅡ ...
" 에엣취 "
" 시오리가 재채기 하는 거 보니 봄이 오긴 왔나보네. "
" 에-? 놀리는거지? 나 아무래도 화분증은 나아지지가 않아서... 오빠, 한국 사람들은 왜 마스크를 안 써? "
" 요즘은 많이 쓰는데? 반대로 내가 묻고 싶다. 일본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마스크를 많이 쓰냐. "
" 문화차이... 어쨌든- 올해 꽃가루는 빨개서 기분 나빠. 마스크는 필수! "
" 작년이나 올해나 똑같은 꽃가루인데? "
" 똑같겠지. 색깔만 다르지. 그치만 내 마음이 싫어하게 된거야. "
" 본질은 변한 게 없는데도? "
" 본질? 아하, 혼시쯔. 응. 바뀐 건 사실 내 마음 쪽이지. 꽃가루는 변한 게 없는걸. "
" 진짜로 바뀐 건 마음이다? "
" 에? 아무튼 꽃가루는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불어올 녀석이잖아? "
" 그렇지. 누가 오라고 해서 오는 건 아니지. "
" 응응. 그냥 오는거야. 빨갛다고 노랗다고 싫어하게 된 건 내 마음이고,
꽃가루는 본질 그대로 바람 따라 그냥 날아다니는거야. 마스크를 쓰는 것도 내 마음,
안 쓰는 것도 내 마음, 그러다 운 나쁘게 맡으면 나처럼... 에취이! "
" 안 되겠다. 카페라도 찾아서 들어가자. "
" 에휴. 나처럼 화분증을 앓는거야. "
" 일어나자, 카페 들어가서 얘기하자. 신문지 잘 챙겼네... 그냥 앉았으면 큰일날뻔 했어. "
" 어라, 진짜네. 흰 치마인데 더러워질 뻔 했어. 카페 어디 갈까? "
" 이 앞에 가면 카페거리야. 근데 자리가 있으려나... 어서 가자. "
" 응. 에취! "
벤치에서 일어선 연인은 돗자리 대신 벤치에 깔고 앉았던 신문지를 쓰레기통에 우겨넣었다.
연인이 멀리 사라질 즈음 바람이 불어오더니 구겨진 신문지가 촤락, 반쯤 다시 펼쳐졌다.
[ 사건사고 : 일본인 N양 토막살해범, 산길 도주 중 시체로 발견 ]
[ 데일리/리빙 : 붉은 꽃가루, 성분 조사 결과 기존과 다르지 않아, 평소 대비 중요 ]
[ 명언 한 줄 : 돌이 항아리 위로 떨어져도 항아리의 불행, 항아리가 돌 위에 떨어져도 항아리의 불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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